“돈이나 권력의 유무가 아니라 ‘죄의 유무’ 따져서 판단해야”

[이코노뉴스=최아람 기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검찰의 기소 여부 결정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검찰 수사심의위원회(수사심의위)가 이재용 부회장 등에 대한 수사 중단과 '불기소'를 권고했지만, 일부 정치권 등에서 수사심의위 결과를 부정하고 처벌을 강요하고 있다.

검찰도 통상 수사심의위 권고 후 일주일 내로 최종 결정을 내려온 관례와 달리 이번 사건은 수사심의위가 열린지 보름이 지난 13일까지 결론을 내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재계는 이에 대해 “수사심의위의 권고가 존중돼야 한다”면서 “무리한 처벌을 강요하는 것은 뒤늦은 억지”라고 주장했다. 

앞서 수사심의위는 지난달 26일 과반수 찬성으로 '수사중단 및 불기소 의견'을 의결했다.

검찰 외부 인사들로 구성된 수사심의위는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및 경영권 승계 의혹에 연루된 이 부회장을 기소하는 것이 타당하지 않다는 결론을 낸 상태다.

◇ “코로나19 등 위기 상황, 무리하게 기업 압박하는 행태 중단”

하루하루 검찰의 결정을 기다리는 삼성의 초조함은 극에 달하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와 미국과 중국의 무역 갈등 등 모든 역량을 결집해도 위기 극복이 쉽지 않은 현실에서 검찰이 무리하게 기업을 압박하는 행태를 중단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서초사옥/뉴시스 자료사진

실제 이 부회장이 수사와 재판에 얽매일 경우 삼성의 경쟁력이 약화될 수밖에 없다. 삼성은 이 부회장이 국정농단 사건과 관련해 구속된 2017년 2월 이후 지금까지 굵직한 인수합병(M&A)을 진행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검찰이 심의위 권고안에 따라서는 안된다'는 주장은 잦아들지 않고 있다. 오히려 검찰에 '기소 강행' 명분을 주려는 목소리는 더욱 거세지고 있는 실정이다.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들은 지난 8일 서울중앙지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 부회장의 불법승계 사건 수사 결과와 상관없는 검찰 내부 갈등을 이유로 경제정의 구현이 지연돼서는 안 된다"며 "할 일은 하고 싸우라"고 강조했다.

'검언유착' 의혹 수사를 둘러싸고 윤석열 검찰총장과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간 갈등과 상관없이 이 부회장 사건은 ‘기소’를 강행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 사건은 ‘검언유착’ 갈등과는 상관없이 이미 ‘불기소’로 결론이 내려진 사안이라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일각에서는 이번 수사심의위가 전문성·공정성 등에서 허점을 드러냈다는 지적이 나오지만 이는 아전인수식 해석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 “수사심의위, 전문성 토대로 객관적, 공정하게 판단할 자격과 역량 갖춰”

법조계에 따르면 검찰 수사심의위는 미국의 대배심, 일본의 검찰심사회와 비슷한 제도다. 모두 민주적 통제를 통해 검찰의 권한을 견제하자는 취지다.

특히 수사심의위의 전문성은 이미 검증됐다고 볼 수 있다. 수사심의위 위원은 평범한 일반인들 가운데 추첨된 이들이 아니라 규정에 따라 '사법제도 등에 학식과 경험을 가진 사람으로서 덕망과 식견이 풍부한 사회 각계의 전문가'로 검찰총장이 직접 위촉했다.

실제로 이번 사안을 심의한 현안위원의 경우 변호사 4명을 비롯해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회계 전문가, 중견 언론인, 종교인 등의 인사들이 포함됐다.

각자의 전문성을 토대로 객관적이고 공정하게 판단할 충분한 자격과 역량을 갖고 있다고 볼 수 있는 인사들인데 이를 부정하는 것은 위원들의 역량을 폄훼하는 것으로 밖에 볼 수 없다.

법조계 안팎에서는 수사심의위의 불기소 권고는 이번 사건의 핵심 쟁점인 ‘회계처리 기준 위반 여부’ ‘합병 절차의 불법성 여부’ 등과 관련해 심의위원들이 각자의 전문성을 토대로 객관적이고 정확하게 사안을 판단했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지난달 26일 열린 검찰 수사심의위에서도 현안위원 13명은 10대 3으로 이재용 부회장에 대한 수사 중단과 불기소 권고를 내렸다. 거의 압도적인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재계 관계자는 “이미 ‘기소하는 게 마땅하다’는 결론을 내려놓고는 기대와 반대 결과가 나오자 ‘분풀이’하는 식으로밖에 해석이 안된다”면서 “경기 종료 휘슬이 울린 뒤에 뒤늦게 ‘룰이 잘못됐으니 결과가 무효’라고 주장하는 것과 다를 게 없다”고 말했다.  

◇ “법원 판결 통해 '문제없는 합병' 결론 내려진 상태”

수사심의위가 이른바 ‘여론 재판’이라는 비판도 나왔지만 이는 대배심과 같은 ‘검찰 견제 기구’의 취지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런 식의 주장이라면 모든 사건은 검찰이 꾸리는 전문 수사팀에 의해서만 판단이 이뤄져야 한다.

수사심의위는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졌기 때문에 이번 사건을 위원회에 회부한 것 자체가 부적절하다는 주장도 마찬가지다. ‘돈과 권력이 많은’ 이 부회장 관련 사건은 대상에서 아예 제외해야 한다는 논리다.

이는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고 규정한 대한민국 헌법(제11조)의 정신을 무시하는 처사다. 재계 관계자는 “돈이나 권력의 유무가 아니라 ‘죄의 유무’를 따져서 판단해야 하는 것”이라면서 “특정인에게만 처벌을 강요하는 것은 법에 어긋난 처사”라고 지적했다.

▲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 6일 경기도 삼성전자 수원사업장에 위치한 C랩 갤러리를 찾아 사내 스타트업 '릴루미노' 기술을 체험하고 있다. '릴루미노'는 VR기술을 이용한 시각장애인 시각 보조 솔루션이다. (사진=삼성전자 제공)

이재용 부회장에 대한 불기소 결정이 옳다는 근거는 한두가지가 아니다. 우선 검찰은 경영권 승계를 위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주가(종목 시세)를 고의로 조작해 합병 비율을 왜곡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삼성 측은 이 문제는 이미 법원 판결을 통해 '문제없는 합병'이라는 결론이 내려진 상태라고 맞서고 있다.

지난 2017년 진행된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무효 민사소송에서 법원은 기각 판결을 내렸다.

당시 법원은 “두 기업의 합병에 따라 경영 안정화 효과가 있었고, 경영권 승계만이 유일한 목적으로 보이지 않아 사기적 부정 거래나 주가 조작을 인정할 수 없다”고 밝혔다.

재계를 중심으로 '삼성 물고 늘어지기냐'는 비판 여론도 만만찮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8일 SK하이닉스 이천 공장을 찾아 일본의 수출 규제 1년을 맞아소재·부품·장비와 첨단산업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최준선 성균관대 법대교수는 "대통령도 정부와 기업은 한 배를 탔다 말씀하시는데 (정부에서) 서로 간 손발이 안 맞는 디커플링이 되는 것 같다"며 "손발이 맞아야 기업도 기가 살 것"이라고 말했다.

◇ “기소 자체만으로 ‘유죄 낙인’...기업인은 경영현장에서 사활 걸어야‘

수사심의위 제도는 ‘검찰수사의 절차 및 결과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제고한다’(대검찰청 예규 ‘검찰수사심의위원회 운영지침 제1조)는 목적에서 자체 개혁 방안의 하나로 문재인 정부 때인 2018년 1월 도입됐다.

수사의 정당성을 외부 전문가를 통해 평가받기 위해 검찰 스스로 도입한 제도의 취지가 있고 제도 시행 이후 열린 8차례 수사심의위의 권고를 모두 따랐다.

수사심의위 권고가 강제성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이 같이 8차례 모두 권고를 따른 점만 봐도 제도의 신뢰성은 충분히 확인됐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따라서 검찰이 자신들의 편의에 따라 제도를 이용한다는 비판을 받지 않으려면 이번에도 수사심의위 권고를 존중해야 한다는 게 법조계와 재계의 시각이다.

박인환 전 건국대 교수는 뉴시스와의 인터뷰에서 "검찰이 강공책을 선택한다면 법원에 의한 구속영장의 재기각이나 무죄 판결의 경우 그 부담은 고스란히 검찰이 떠안게 될 것"이라며 "수심위 결정은 검찰권 행사에 대한 국민적 참여와 국민적 통제라는 문재인 정권의 검찰 개혁 과제를 실천하기 위해서도 존중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검찰이 수사심의위 권고를 받아들일 경우 개혁 의지를 확인하는 동시에 긍정적인 평가를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도 나온다.

오랜 기간 수사를 진행했는데도 외부 전문가들의 의견을 존중해 과감하게 불기소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검찰에 대한 국민 신뢰를 높이는 계기가 될 수 있고 있고, 검찰의 위상을 다지는 좋은 기회가 될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재계 관계자는 “기소는 그 자체만으로 ‘유죄의 낙인’으로 받아들여진다는 점에서 검찰의 결정이 주목된다”면서 “기소만으로 기업의 대외신인도는 추락하고, 기업인들은 경영현장이 아닌 법정에서 시간을 보내야 한다는 재계의 우려를 감안하기 바란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이코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