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영진 논설고문

[이코노뉴스=남영진 논설고문] 흔히 쓰는 ‘한편의 영화 같다’거나 ’소설 같은 이야기‘는 가공의 상상력이 발동된 말인 줄 알았다.

그런데 딱 21년 전인 1997년 말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평화적 정권교체가 이루어진 것이 북한의 ’부작위‘ 협조로 가능했다는 게 영화 ’공작‘의 결론이다. 무슨 뜬금없는 영화 같은 얘기인가 생각하겠지만 실제로 일어난 이야기다.

당시 집권 한나라당은 1996년 총선을 앞두고 북한에 휴전선 도발을 부탁해 소위 ’총풍‘으로 승리했다. 이어 1997년 대선전에 김대중 후보의 당선을 저지하기 위해 한나라당과 국가안전기획부(안기부)가 또다시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휴전선 일대에 좀 더 큰 도발을 요청했다.

야당의 천용택 이종찬 신건 박지원 등이 이를 알고 총력을 기울여 막으려 백방으로 뛰었다. 영화 ‘공작’에서는 안기부의 북파공작원인 ’흑금성‘이 ’이건 아니다‘싶어 북한 대남책임자와 김정일을 만나 저지했다는 스토리다.

성균관대 총장을 지낸 장을병 교수(정치학)가 분단 이후의 남북정권은 ’적대적 공생관계‘를 유지해왔다는 용어를 사용한 바 있다.

남북이 총부리를 겨누면서도 정권은 ’안보‘나 ’국가보위‘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공작을 통해 정권안보를 유지해왔다는 것이다. 미중관계 개선직후 1972년 박정희의 ’유신헌법‘이나 김일성의 ’사회주의 헌법‘으로 정권의 체제를 더욱 강화한 것이 대표적인 예다.

안기부는 이미 대북사업을 위해 주식회사 아자커뮤니케이션을 만들고 군인 출신인 박채서(암호명 흑금성)를 위장취업 시킨 뒤 중국을 무대로 대북 사업과 관련한 공작을 벌였다.

영화에서는 흑금성이 북한의 대외경제담당자 리명운을 접촉해 신임을 얻은 뒤 북한 핵시설의 실태를 파악하기 위해 평북 영변 지역에 들어가 대기업 광고를 찍는다는 공작을 벌였다.

▲ 영화 공작 포스터/CJ엔터테인먼트

그러나 흑금성이 한나라당과 안기부 수뇌가 북한 김정일에게 총풍 때보다 더 규모의 큰 휴전선 일대의 무력도발을 부탁하는 것을 알게 되고는 96년 총선에서 ‘총풍’을 승인했던 김정일을 만나 대선공작을 반대해 성사가 안 된 것으로 나온다.

이 비밀거래 상황은 김대중 대통령 당선 다음해인 98년 3월 안기부 전 해외실장 이대성씨가 안기부의 해체를 막으려 국내 정치인과 북한 고위층 인사 간의 접촉내용을 담은 기밀정보를 폭로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이대성 파일’에는 안기부가 97년 대선을 앞두고 북한 관련 정보를 선거와 정치에 어떻게 이용했는지 상세히 담겨있다. 그러나 이것이 안기부 수뇌부가 자신들의 책임을 흑금성에게 덮어씌운 것임이 드러나 흑금성은 무죄로 풀려난다.

충북 청주 출신의 박씨는 명문 청주고를 졸업한 뒤 육군 3사관학교를 졸업하고 77년 소위로 임관해 국군 정보사 공작단 공작관(현역 소령)으로 있다가 안기부의 대북 공작원으로 특별 채용돼 대북공작 사상 최고의 성과를 올렸다.

그러나 김대중 대통령이 당선되자 국정원 지도부가 '북풍 공작' 등 자신들의 범죄행위를 은폐하기 위해 또다시 흑금성에게 책임을 덮어 씌운 것이다.

▲ 영화 '공작' 시사회가 열린 지난달 31일 오후 서울 용산구 CGV용산아이파크몰에서 감독과 배우들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뉴시스

흑금성은 '이대성 파일'이 공개되는 바람에 흑색공작원 신분이 드러나 국정원에서 해고됐다. 국가 정보기관의 수뇌부가 기밀을 유출해 엄청난 비용을 들여 10년 넘게 지속된 국가공작망이 하루아침에 붕괴된 이 일은 세계 첩보사에 희귀한 케이스였다.

흑금성은 북한을 상대로한 특수공작원이었는데 이 파일로 인해 거꾸로 북한의 대남 공작기관에 위장 포섭된 것으로 둔갑했다. '이중 공작원' 역할을 하던 박씨의 신분이 드러나 그는 세상 밖으로 버려졌다. 영화에서는 이후 흑금성이 함께 일했던 2005년 북한의 중국 외회벌이 책임자 리명운과 계속 관계를 유지해 남한 대기업의 북한내 광고를 찍는데 성공하는 등 일상적인 생활을 했다.

리명운이 흑극성에게 ‘호연지기’(浩然之氣)라는 글이 새겨진 만년필을 선물하면서 체제는 달라도 이를 뛰어넘어 인간으로서 서로의 믿음과 우정을 계속 쌓고 유지해왔다는 ‘통 큰 거래’의 훈훈함도 비쳐진다.

이것이 문제기 되어 사건 12년이 흐른 뒤인 이명박정권 시절 2010년 6월 1일 새벽 6시, 흑금성은 서울 염창동의 한 아파트 자택에서 체포된다.

이름을 바꾼 국가정보원 대공수사국 요원들에 의해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로 긴급 체포됐다. 이후 20일 동안의 국정원 조사와 30일 동안의 검찰 조사를 거쳐 그에게 적용된 죄명은 간첩, 특수잠입-탈출, 회합-통신, 편의 제공 등 국가보안법 상의 거의 모든 죄명이 망라됐다.

그 자신이 육군 소령이자 국군 정보사 공작관 출신으로 그 누구보다도 국가관이 투철했고, 그래서 첩보공작 유형 중에서 가장 고난도에 속하는 'A급 이중공작원'이었던 그가 과연 북한에 포섭된 '간첩'일까? 국가 정보기관이 '해고'한 뒤에도 여전히 대북 비선(秘線)으로 활동한 그를 '정치적 희생양'으로 삼아 다시 한번 정권안보에 이용한 것이다.

20여년 동안 직업군인과 대북 특수공작원(암호명 흑금성)으로 일했던 박채서씨는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로 구속돼 재판을 받았다.

흔히 '블랙'(흑색공작요원)으로 부르는 비밀공작원이 자국의 공개법정에서 재판을 받은 것은 극히 이례적인 사건이다.

▲ 영화 공작 스틸컷/CJ엔터테인먼트

흑색공작원들은 상대국에서 체포돼 재판을 받고 수감되거나 국가 간 비밀협상에 의해 추방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국가 비밀공작은 국익을 위해 비합법적으로 수행하는 통치행위의 한 수단이다.

그래서 국가 비밀공작의 최종 승인권자는 대개 국가정보원장이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대통령이 인가한다. 비밀공작은 대부분 국내법과 국제법상 불법행위를 수반하기 때문에 비밀공작이나 흑색공작원의 실체를 인정하는 국가는 지구상에 없다. 그래서 흑색공작원이 자국의 법정에 서는 일은 거의 없다.

결국 ‘공작’의 피해는 공작을 성공(?)시킨 흑금성에게 직접 돌아갔다. 더 큰 피해자는 정권이 반공과 안보를 빌미로 국민의 불안심리를 부추기자 총선과 대선에서 국회의원과 대통령을 잘못 뽑은 남한 국민들이었다.

※ 남영진 논설고문은 한국일보 기자와 한국기자협회 회장, 미디어오늘 사장, 방송광고공사 감사를 지내는 등 30년 넘게 신문·방송계에 종사한 중견 언론인입니다. [이코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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