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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이장군, “사나이 스무 살에 나라를 평정치 못하면 그 누가 대장부라 일컫겠는가”…남이섬에 가묘와 추모비

기사승인 2019.08.18  12:5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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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뉴스=김문철 기자] 남이(南怡)장군이 화제다.

남이장군은 조선 세조 때의 무신이다. 이시애의 난 등에서 공을 세워 세조의 총애를 받았으나 세조가 죽은 후 역모에 몰려 처형되었다.

▲ 남이장군 사당제에서 여진족을 토벌하기 위해 출진하는 모습을 재현하는 행진을 하고 있다./뉴시스 자료사진

조선의 개국공신인 남재(南在)의 5대손이다. 아버지 남빈은 조선의 제3대 왕인 태종(太宗)의 딸 정선공주(貞善公主)가 의산군(宜山君) 남휘(南暉)와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이다. 조선의 제7대 왕인 세조(世祖)에게 남이(南怡)는 고종사촌의 아들인 셈이다.

남이장군이 천지를 바라보며 북받치는 뜨거운 가슴으로 지었다는 한시는 짧은 인생을 굵게 살다간 한 대장부의 기개를 우리들의 가슴에 그대로 전하고 있다.

백두산석마도진 (白頭山石磨刀盡)이요, 두만강수음마무(頭滿江水飮馬無)라,남아이십미평국 (男兒二十未平國)이면 후세수칭대장부(後世誰稱大丈夫)리오.

백두산의 돌은 칼을 갈아 닳게하고, 두만강의 물은 말을 먹여 없애도다 사나이 스무 살에 나라를 평정치 못하면 후세에 그 누가 대장부라 일컫겠는가.

네이버 백과사전에 따르면 세조는 남이와 구성군(龜城君) 이준(李浚) 등 젊은 종친(宗親)들을 중용하여 원로대신들을 견제하려 했다. 남이는 세조가 1460년(세조 6)에 무인들을 등용하기 위해 실시한 경진무거(庚辰武擧)에 급제하여 관직에 올랐다.

이시애의 난을 평정한 후에는 행 호군(行 護軍)이 되어 종성(鍾城)에 주둔하며 온성(穩城), 경원(慶原), 경흥(慶興) 등의 고을을 다스렸다.

27세의 나이로 공조판서가 되었으며, 왕궁의 호위를 담당하는 겸사복장의 지위를 겸하였다.

1468년(세조 14) 7월 세조가 이준을 20대의 나이에 영의정으로 임명하면서 남이도 공조판서와 오위도총부 도총관의 지위를 겸하게 했으며 8월에는 병조판서로 삼았지만 한계희(韓繼禧) 등 대신들의 반대로 9월에 병조판서의 자리에서 물러나 다시 겸사복장이 되었다.

그러나 1468년(예종 1) 10월 병조참지 유자광의 고변으로 역모의 혐의를 받았고, 그해 음력 10월 27일에 저자에서 거열형으로 처형되었다. 이 사건을 ‘남이의 옥(獄)’이라고 한다.

남이는 1818년(순조 18) 음력 3월 10일에 우의정 남공철(南公轍)의 청에 따라 강순과 함께 사면되어 관작이 복구되었으며, 1910년(순종 3)에는 '충무'의 시호가 추증되었다. 경기도 화성시 비봉면 남전리에 남이의 묘소로 전해지는 남이장군묘가 있고, 강원도 춘천시 남산면의 남이섬에도 그의 가묘와 추모비가 있다.

김문철 기자 ace8819@econonews.co.kr

<저작권자 © 이코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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