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관파천(俄館播遷)이 화제다.

아관파천은 명성황후가 시해된 을미사변(乙未事變) 이후 일본군의 무자비한 공격에 신변에 위협을 느낀 고종과 왕세자가 1896년(건양 1) 2월 11일부터 약 1년간 조선의 왕궁을 떠나 러시아 공관(공사관)에 옮겨 거처한 사건을 말한다.

▲ 옛 러시아 공사관/뉴시스

네이버 지식백과에 따르면 을미사변 이후 일본의 영향 아래에서 조직된 제4차 김홍집 내각은 단발령 등 급진적인 개혁을 단행하였으나 명성황후의 시해와 단발령의 실시는 친일내각과 그 배후세력인 일본에 대한 국민의 감정을 극단적으로 자극하여 전국 각지에서 의병항쟁이 일어났다.

이범진·이완용 등 친러파 세력은 친위대가 의병을 진압하기 위해 지방으로 이동한 틈을 이용하여, 자신들의 세력만회와 신변에 불안을 느끼고 있던 고종의 희망에 따라 러시아 공사 베베르와 협의하여 보다 안전한 러시아 공관(공사관)으로 이동(파천)하였다.

이들은 2월 11일 새벽 국왕과 왕세자를 극비리에 정동에 있던 러시아 공관으로 옮겼다.

고종은 즉시 친일파 대신들인 김홍집(총리대신)·유길준 등을 체포하여 처형하도록 명령하였다.

김홍집은 청일전쟁과 갑오경장, 동학 봉기와 아관파천 등 역사의 격변기 속에서 네 번이나 총리대신직을 맡아 국정을 총괄했던 정상급의 개혁 관료였지만, 1896년 2월 11일 아관파천 직후 고종의 밀명에 따라 정식 재판 없이 경무청 순사에 의해 격살된 뒤 군중들로부터 시신이 짓이겨지는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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